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
2023-12-19 20:20:29 -1-11-30 00:00 107 hit
태평봉수대태평봉수대 계단쪽
주천면 대불리 산31-2 봉우재(818.5m)에 있는 봉수대. 1977. 12. 31 전라북도 지방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었다. 국유(國有)로 진안군이 관리한다. 대불리와 무릉리의 삼거리에서 무릉리 쪽으로 600m쯤 가다가 왼쪽으로 난 임도가 있는데, 임도를 따라 올라가 종점에서 약 400m 쯤 능선을 따라 오르면 된다. 다른 코스로 대불리에서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서쪽 싸리재 밑에 있던 예전의 윗진등마을 터를 거쳐 완주군 운주면과 경계를 이루는 작은싸리재를 통해서 가야 한다. 봉수대는 산꼭대기에 있는데, 크고 울퉁불퉁한 천연의 암석 위에 잡석으로 쌓아 올린 석축이다. 임진왜란 후 선조 28년(1595) 태평산성(太平山城)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 모습은 대체로 네모꼴이지만 4변이 일정하지 않은데(높이 : 동벽 450cm, 북벽 360cm, 서벽 495cm, 밑변 : 동 1,020cm, 북 700cm, 서 1,050cm, 윗변 : 동 900cm, 북 640cm, 서 900cm, 남 680cm) 남쪽의 대부분과 서쪽 일부의 벽은 무너졌으나 나머지는 거의 완전하며, 가운데는 흙으로 채워져 있다. 올라가는 계단은 없고 남쪽이 출입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태평봉수대는 원래 봉화대가 아니라 성의 망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유는, 윗면까지 흙이 가득 채워져 있을 뿐 아니라 윗부분의 둘레 길이가 약 32m로서 이는 봉화둑으로는 너무 작으며 실제로 그 위에는 봉화를 올리기 위한 어떤 시설물도 없었고 또한 설치할 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시설물을 태평봉수대라 부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태평(太平)은 대평(大平)과 통하거니와 이곳 대불리(大佛里)를 예전에는 대평(大平)이라고 한 기록이 자주 보인다. 실상 대평은 대불리의 옛 이름인 대벌(大伐)과 맥이 닿아있다. 벌(伐)은 들(坪 또는 平)의 음차(音借)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봉수대’에서 연락했다는 위의 태평산성은 다른 곳이 아닌 대불리에 있었던 것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어쩌면 대불리 신기마을 서남쪽에 있는 성재산(786.1m)에 있는 성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로 말미암아 지금의 석축을 ‘태평봉수대’라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앞으로 이 석축의 성격은 더 깊이 조사·연구할 필요가 있다. →봉수.《참고문헌》鎭安地方文化財地表調査報告書(전북대학교전라문화연구소, 1989), 문화재청(http://www.heritage.go.kr/heri/idx/index.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