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면 주양리에 있는 이덕응의 초상화 3점(입상 1점, 좌상 2점). 1987. 4. 28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이덕응(1866-1949)은 덕흥대원군 이초(李岹)의 후손으로 궁내부 판임관을 제수 받았고, 송병선의 제자이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낙향하여 지방에서 인재를 양성하였으며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주천면 대불리에 황단을 설치하고 황단제를 봉행하였다. 1922년에 13도 도순강장에 임명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신유교정신을 통해 배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그의 초상화를 채용신(蔡龍臣)이 그렸다. 채용신(1850-1941)은 조선말 여러 임금의 어진과 고종황제의 초상을 그린 화가로,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 종6품), 의금부도사(종5품), 수군첨절제사(종3품관), 칠곡부사, 정산군수 등 20여년을 관직에 머물면서 가선대부(종2품)에 올랐다. 작가 채용신은 조선말 선비정신과 위정척사 정신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한 화가로 항일 우국지사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1916년 주천면 대불리를 찾아 4개월을 머물면서 이덕응과 제자들의 초상화 5점을 그려 주었다. 당시 이덕응과 채용신과의 관계는 기록이 없으나, 1900년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궁내부에 출사한 이덕응과 같은 무렵 궁중에서 어진을 그린 채용신은 서로 알고 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권 상실 후 주천면 대불리에서 화양도원을 설립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이덕응을 찾아와 그의 초상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상화 3점은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입상 1점과 유건(儒巾)본, 평상복본 등 2점의 전신 좌상이다. 같은 인물에 대해 다양한 의관으로 초상화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관조복의 입상은 155×69㎝의 크기이고, 유복의 좌상은 94×54㎝, 평복의 좌상은 94×54㎝의 크기이다. 비단 위에 채색하였다. 평상복의 초상화는 3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든 얼굴 모습이다. 후손 이부용(주천면 주양리)이 소장하고 있다.《참고문헌》문화재청-우리지역문화재(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