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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1910.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 한말의 의사.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09년 1월 통감 이토[伊藤博文]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안창호(安昌浩)의 만류로 포기하였다. 안중근(安重根)이 이토를 사살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이용구(李容九)·송병준(宋秉畯) 등을 죽이기로 하고, 이완용은 이재명이, 이용구는 김정익(金貞益)이, 송병준은 이동수(李東秀)가 각각 담당하여 암살하기로 하였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종현(鐘峴) 천주교회당에서 나오는 이완용의 허리와 어깨 등을 비수로 세 번 찔러 쓰러뜨렸다. 그리고 일본 경찰에게 왼쪽 넓적다리를 찔려 중상을 입고 붙잡혔다. 서울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는 방청석을 향하여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라.”는 연설을 하였고, 일본인 재판장에게는 “의행을 행한 것”이라고 준열히 나무랐다. 사형이 확정되자 “나의 생명은 빼앗기지만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2001년 ‘이재명의사 기념사업회’가 진안읍 군하리 영사재 앞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大韓駬山廟誌』(진안문화원, 199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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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725년 3월에 부임하여 1728년 6월 김제군수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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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군(金山君)의 후손이다. 황하청(黃河晴)이 기술한 행장이 있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문화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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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636년 3월에 부임하여 1636년 6월에 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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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진안군수. 1970. 3. 3 부임하여 1971. 8. 21까지 1년 6개월간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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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623년 4월에 부임하여 1628년 1월에 이임하였다. 소탈하면서 백성들과 가까웠다고 『鎭安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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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788년 6월에 부임하여 1789년 10월 풍기현령으로 전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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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745년 8월에 부임하여 1747년 6월에 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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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550년대 이전에 재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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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755년 5월에 부임하여 1758년 3월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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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현감. 1773년 7월에 부임하여 1775년 5월에 이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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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681년 8월에 부임하여 1681년 9월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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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826년 3월에 부임하여 1829년 9월 암행어사에 의하여 봉고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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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현령. 1887년에 부임하였으나 이임연도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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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1907. 함경남도 북청 출신의 순국열사·애국계몽운동가. 대한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34위 중 한 분.